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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악의 버림(2018.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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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18-10-2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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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용서의 마음은 하느님의 자비의 마음입니다. 하느님의 자비심이 용서의 마음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상대를 용서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실상 용서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먼저 나의 상심이 풀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상한 마음이 회복되지 않으면 상대를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만큼 나 자신의 회복과 치유가 필요합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나의 상심의 상태가 회복되지 않았고,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용서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의 죄와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야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압니다. 


한편 내가 용서는 했다고 하나, 불현듯 상대를 생각하게 되거나 또 다시 상대의 그릇된 행위를 보면, 과거의  나의 상심을 다시 건드리게 되고, 더구나 나는 아직까지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용서에서 나의 상심이 회복이 먼저냐? 아니면 내 마음의 용서하는 것이 먼저냐? 할 수 있습니다. 용서에서 우선은 나의 상심이 회복되기 위한 것이 먼저입니다. 나의 상심의 치유가 먼저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회복과 치유 후에 상대를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는 자신의 상심회복과 함께 상대에 대한 의지적 용서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도 좋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나의 상심 회복과 동시에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곧 다년간의 용서의 회복의 과정에서, 용서해 온,  용서의 학습효과로써 상대를 바로 용서할 수 있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용서도 점차적으로 성장하고, 궁극적으로는 상대의 잘못을 바로 용서할 수 있는 단계까지도 가면 좋습니다.  


용서로 말할 것 같으면, 용서는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내가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나의 고통, 더 나아가 나의 비참을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상대가 내게 죄와 잘못을 하고 나를 아프고 고통스럽게 했는데 내가 왜 계속 아파야하고, 왜 고통속에 있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괘씸하고 분하고 분노가 솟습니다. 그런 가운데 일어나는 화와 분노가 나를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미우면 미울 수록 더 나는 미궁에 빠지게 되고 어둠의 심연으로 가라앉습니다. 더 고통이 더 무겁게 되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용서할 수 없다는  그것은 바로 나의 심연의 고통이며 비참입니다. 곧 나의 죽음이기도 합니다.


용서하기가 어렵다면 잊는 것이 더 낫습니다. 잊어지지 않으면 무조건이라도 운동이나 산책 등 물리적인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잊지 못하고 자꾸만 생각이 나면 허공이라도 마구 소리를 질러도 됩니다. 계속 불안과 불편, 고통과 아픔이 지속되면 산을 보고 그가 나쁜사람이고, 아주 못되었다고 소리지르고 그를 마구 꾸중해도 좋습니다.

왜냐면 그의 행한 그릇된 행동, 죄와 잘못에 대해서 계속 내가 상심 중에 있고 고통속에 머물고, 그에 의해서 충격 가운데 있는 것. 하느님께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며, 또한 나 자신의 건강함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잊혀지지 않는다면, 주님께 그 미움이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분께 실토하면 좋겠습니다. 그 실토 가운데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실상 우리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용서가 쉽지 않고, 아직 안하고 있는 것은, 그가 미워서가 아니라, 그의 그릇된 행업을 바꾸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런 그의 악한 행위가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잘못을 하고 그릇된 행동을 하고 악행을 했했는데도 준엄하게 꾸지지 못하는 아쉬움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하더라도 그는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지금껏 그렇게 악하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심하고 고통 중에 있는 내가 먼저 치유가 되고 회복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사랑할 수 있고, 이웃을 사랑하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주님의 일도 제대로 해 낼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소중하며, 귀하며, 보물같은 존재입니다. 하느님의 사랑받은 자녀이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서 얻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가족에게, 이웃에게 특히 하느님에게 매우 소중한 사람이고 자녀고 일꾼입니다. 


상대의 그릇된 행동으로, 잘못과 죄로 고통과 상심에 있을 때 빨리 빠져나오기 바랍니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시고 바라십니다. 빨리 회복이 되어 기쁘고 즐겁고 희망을 가지고 감사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그런고로 용서에 대해서, 하루빨리 용서하길 바라고, 용서할 수 없다면 상대를 잊어버리거나 잊도록 노력하기 바랍니다. 하루빨리 상심이 회복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용서는 나의 회복에서 시작되고, 나의 치유에서, 나의 온전함에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먼저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나의 회복과 치유가 먼저고, 나의 불편과 아픔과 고통 회복이 먼저입니다. 하느님은 나를 소중이 여기시고, 최고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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