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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그 참을 찾아서(201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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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76회 작성일 18-11-01 11:28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예수님은 다른 이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너희의 허물도 용서하신다. 다른 이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의허물도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하였습니다(마태 6,14-15).


한사람도 구원에서 멀어지지 않고, 떨어지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아흔 아홉의 양들을 따로 놔둔채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는 목자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주 예수님의 뜻은 세상 모든 세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하시고자 오셨습니다.


지하철역에서 어떤 이가 큰 소리로 스마트폰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소리를 지르는 수준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뿌렸습니다. 주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열차가 오는 동안 내내 그렇게 했습니다. 내용은 상호 상거래 간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거래에서 소외되었던 것에 대한 또 다른 이에게 대한 넉두리였습니다. 조용히 대화하고 소화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종 이런 비슷한 일이 주변에서 발생할 때, 여러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어찌 공공장소에서 혼자서 떠들어 대는가? 등등.


세상사에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각자의 가치와 입장에 따라 피하거나,미온적으로 대하거나 아니면 무시하거나, 개입할 것입니다. 어떤 방법이든 나와 우리, 그와의 갈등을 풀어가게 됩니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라도 풀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문제는 그 풀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한 행위가 단지 오늘 내일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조용히, 다른 곳에서, 개인적으로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는 그가 단지 오늘의 실수나 오늘 행위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살아온 그의 삶의 여정과 역사 만큼 겹쳐져 있고, 쌓여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이나 가정, 공동체에서 서로의 의견과 가치가 평행선을 이루고, 줄곧 살아오는 동안 해결되지 않는 경우를 보면, 나나 그, 나와 우리,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 여정과 역사에 관해서 모르는 것. 무지가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실상 어떤 사람이 동일한 부끄럽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자기의 잘못과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이것이 고쳐지거나 극복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계속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일이나 사건, 만남은 하나의 현장이자 현상입니다. 물론 현장에서 사람이나 물체나 대상과의 사건과 일은 현상적으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본질이라고 하는 원천이 있습니다. 만일 다른 사람 에게 무력을 행사했다면, 그 무력은 그의 가치와 마음에서, 그의 내적 갈등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것이 현장에서 어떤 현상으로 드러난 것이라면, 이미 그의 내적 가치와 갈등의 요인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가 그런 가치와 내적 갈등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상황이 달라도 그렇게 되풀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의 되풀이 되는 이런 굴절된 행위들이 다른 사람들로 부터 화나 분노, 또는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지만, 그 자신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화나 분노도 표시하지만, 또한 측은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이들에 대한 측은지심은 그를 알게 되고, 그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측은지심은 앎의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고 악한 행위를 할 때에 내가 정의의 분노가 일어나면서, 측은지심을 가지게 될 때에 그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 그 부질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도 바르게 건강하게 되어야 하고, 주님은 그들도 구원받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겉에 나타난 현상적인 것만 가지고는 문제의 해결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의 본질, 내면, 속의 원천을 볼 수 있을 때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 도와주고 그를 돌볼 수 있습니다.


용서라는 것은 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참이 본질입니다. 그 현상을 보고 판단 평가 결정을 내리지 않고, 현상 밑에 있는 본질, 그 원천을 바라볼 때 문제를 풀 수 있고, 또한 용서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들에게, 악행을 한 사람들을, 극심한 고통을 준 그런 원수같은 사람을 용서할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도. 현상적으로 한 행위보다, 그들의 본질, 원천을 알고, 그들을 구원할 마음과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용서하기가 매우 굼뜨지만, 주님은 용서를 통해서 그가 구원받기를 바라십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용서는 나와 그, 나와 우리, 우리 모두가 현상의 겉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속 그 본질, 원천의 '참'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비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목요일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 22-23


용서는 참을 찾는 것. 그것을 찾아가는 것. 각자의 참의 본질, 원천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참을 찾아가는 동안 용서의 길. 그 지름길을 알게 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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