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자신을 받아들임(2021.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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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48회 작성일 21-03-18 09:40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14,6
스스로를 받아들이라. 스스로를 허락하라. 자신 스스로를 이해하라. 자신. 그와 화해하라. 그와 용서하라. 자기의 허물을 볼 수 있다면, 자기의 죄와 악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의 허물의 시작을 찾을 수 있고, 그것을 거슬러 올라가며, 그것의 시작을 알고 있으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죄와 악습을 알고 깨달으며, 그것을 떨어 버리고, 떨쳐 버리면 얼마나 좋고 아름다운가! 허물을 탓하고 죄과에 슬퍼하며, 절망에 쌓여 흐느적거림이 얼마나 애처로운가! 나의 불안과 초조에 머물러 있고, 길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며, 다가올 부담과 피해의 감지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면 얼마나 측은한 것인가! 자기라는 '상대' 자기라는 '너', 너라는 '나의 존재' 피하고 벗어나고자 한다면 나는 타자로 존재하고, 나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입니다. 초조 불안한 것도 '나'요, 허물을 탓하고, 잘못된 행동에 아파하는 것도 '나'요, 그릇된 결과에 절망하는 것도 '나' 그것이 나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인정하고 수락하는 것. 나의 몰골과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그것을 알았든 몰랐든, 깨달았던 깨닫지 못했던, 무지든 실수든 어떤 것이든 그것은 나의 것, 나의 현재, 나의 삶의 처지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나도 현재 어찌할 수 없고, 내 스스로, 나의 힘과 의지로 어쩔 수 없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고 나서, 광야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주님의 명령을 너무도 빨리, 쉽게 잊어버리고 벗어나버렸습니다.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고 신으로 만들어 절하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를 자기들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하느님은 진노하고 그들을 쓸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영도자 모세는 하느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합니다. 그 구함이란,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약속에 대한 회상의 요청이었습니다. 당신 손으로 이 민족을 이집트에서 끌어내시고서는 당신 백성에게 진노하십니까? 그들을 끌어내리고 이 산에서 죽이시려는 것입니까? 하고 하느님과 백성들과의 계약을 그분께 회상하게 해 드리고는, 그분의 진노를 멎게 합니다. 아! 그렇습니다. 인간은 허물과 죄과 그리고 그릇됨으로 사는 하찮은 존재. 그들은 구제 불능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자비와 사랑은 그들을 용인하시고 진노를 푸십니다.
당신은 당신 자녀들과 맺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주 예수님 앞에서 나의 모습 처지를 그 허물과 부끄러움을 보여드리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그 부끄러움과 허물에 다가오시고, 그를 용서해 주십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14,6
주님, 제가 제 허물을 보게 하소서, 그릇됨과 죄과도 보게 하소서. 당신의 자비와 용서의 은총으로 받아주소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제 허물과 부끄러움 뿐. 그것을 보여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청합니다.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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