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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어떻게?(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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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16회 작성일 21-10-2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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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한다고 하지만 내 마음에서 용서의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용서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용서한다해도 그 용서는 그에게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용서라는 말이 그에게 해당되지 않습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지금은 그에게 용서가 적용되어지지 않습니다.

용서라는 말 자체가 허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실수로 내 발을 밟았다.면 그것은 쉽게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말실수를 했다면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의도치 않고 내게 피해를 입히거나 손해를 보게 한 것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깨닫지 못한 체 무시하고 외면한 것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가 무지하고 지식이 없어서 잘못 행동한 것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여정에서 어쩔수 없이 잘못한 것은 내가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한 죄와 잘못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의도치 않아도 무자비한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상대를 절망에 몰아넣고 죽이려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불의한 죄를 정당화하고 그것을 덮어 씌우려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불의함이나 폭력을 혼자가 아니라 무리지어 공격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선과 자비로 살리는 것이 아니라 악과 무자비함으로 공격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제아무리 법이 규정에 있다 하여도 그것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용서하라는 말씀을 단순하게 생각하여 무엇이든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그 용서하라는 말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용서는 선과 진리, 

정의와 공정의 용서지 죄와 악, 그릇됨과 악행의 용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죄와 악행, 불의와 부정의 것은 그가 방향을 바꾸거나 고칠 때에 용서를 논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짓는 

완고함과 선을 호도하는 것을 단지 용서한다는 것은 용서를 왜곡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선하고 참되며, 그 공정의 자비와 사랑입니다. 그것이 용서입니다.

 용서는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선 진리, 자비와 공정의 마음에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그 용서가 이루어짐을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그 용서를 노력하고 또 훈련도 합니다.

  성령께서 오시고, 그 성령의 힘으로 식별하고 거룩하게 되어 용서의 끝까지 도달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용서의 길을 알게 하소서. 용서의 법을 알게 하소서. 용서가 불의과 거짓을 벗어나고 진리와 선함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하서소. 용서가 자비와 사랑 이전에 정의와 공정에서 이루어짐을 알게 하소서! 성령이시여! 용서의 깊음에 

도달하게 하소서. 용서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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