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상생에서(2021.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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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34회 작성일 21-11-04 11:39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먼 높은 산은 단풍이 지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심은 지금 단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비가오고 나서 낙엽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도로나 산길에 낙엽이 쌓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낙엽이 땅을 덮고 있습니다. 생각합니다.
"참, 낙엽이 땅을 덮고 보듬고 있구나!"
봄부터 가을까지 땅은 뿌리를 내기로 줄기와 가지를 세우고 잎을 내었습니다.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었습니다. 이제는 나무가 잎을 떨어뜨립니다. 낙엽입니다. 땅은 나무를 도와주고 이제 나무는 낙엽으로 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상생입니다. 서로 살아감이 서로 서로 도와줍니다.
그가 나에게 피해를 주고 고통을 안깁니다. 나는 그 피해와 아픔에서 괴로워합니다. 마음에서 괴롭고 곤경에 처합니다. 특히 곤경에 처한 나는, 캄캄함 속에서 크게 상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는 나를 고통과 좌절 속에 몰아넣은 그 사람에게 분노하고 마음의 화를 벗기지 못합니다. 그의 그릇됨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더욱이 그의 불의와 악행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가 회개하거나 사과하지 않으면 이해는 물론 용서란 단어 조차 받아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를 받아들이라거나 이해하라던가 더구나 용서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화가 나고 크게 반박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게 반박하고 대응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그것은 나의 잘못도, 죄도 그릇됨도 아닙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닐 뿐 만 아니라 오히려 나의 건강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좋은 일이고 필요합니다.
나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고, 건강하고 행복해야 할 귀한 자녀입니다. 그릇됨에 불의함에 그리고 그의 악행에 괴롬만 받고 상처만 받고 고통받아야 하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나도 하느님의 귀한 보물같은 존재입니다. 아멘입니다.
상대의 공격과 힘의 누림에 그냥 수용하지 말고, 오히려 나를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도전하고 용기를 갖고 반박하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귀한 자녀인 나도 행복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용서하는 것은 상생의 뜻이 있습니다. 그가 살려고 하면 나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죄를 벗어야 한다면 그도 죄를 벗어야 합니다. 악과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면 그도 마땅이 죄를 짓거나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불의와 악행을 내가 고통을 받는 것을 하느님은 바라지 않으십니다. 그나 나나 곧 모두가 하느님 앞에서 바르게 살아야만 행복한 것입니다. 만일 그만 살고 내가 죽는 것은 용서도 아니로, 그 상생도 아닙니다.
나도 살고, 그도 살려면 나의 선함과 참됨의 길처럼, 그도 선하고 참됨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가 불의하고 악의를 가지고 있을 때 그에게 반박하고 도전하는 것이요, 그것은 그를 살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상생입니다.
용서는 상생입니다. 함께 서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용서가 상생이라면, 나도 살고 그도 살아가도록 방법을 마련합니다. 용서가 상생이라면, 그가 소멸되고 죽어가는 것을 그대로 놔두지 않습니다. 용서가 상생이라면, 오히려 그에게 반박하고 도전하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주님, 용서가 상생임을 알게 하소서. 그가 살아야 한다면 나도 살아야 함을 알게 하소서. 나의 선함과 착함과 거룩함으로 산다면 그도 그 선함과 착함과 거룩함으로 살게 하소서. 그가 선과 사랑, 진리와 공정으로 살기까지 그에 대한 나의 도전과 용기를 잃지 않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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