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상처를 보라(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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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62회 작성일 21-12-16 09:40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3-24
사람이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일도 있습니다. 좋은 일의 기쁨은 잠시, 그렇지 못한 일은 마음 안에 오래 남습니다.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고, 비슷한 일이 계속 겹쳐지면, 그 어려움과 괴로움, 고통과 좌절감을 갖습니다. 그렇게 시일이 흐르고 세월이 되면 그것이 괴로움의 계곡에 갇히게 되고, 이후에 그런 조짐과 그런 가능성에서도 내면과 마음에서 먼저 부담을 느끼고 막으며 그것에 대해서 벽을 쌓아버립니다.
그것이 어려움과 좌절의 당사자가 아니어도 훨씬 더, 멀리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것이 내 마음, 내 속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심리적 차원에서는 무의식에 이런 부정의 요소가 남아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부정적 요소가 풀리거나 해결되지 않으면, 곧 해결의 방향이 없으면 피해의 의식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말하는 '상처'입니다.
과거의 아픔과 고통, 좌절과 절망, 심리적 정신적 육체적인 치유와 해결 방법이 없을 때 상처는 계속 흘러나오고 그 상처의 구조적 강함이 자신에게 뿐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미치게 됩니다.
사람의 여정에 긍정적 희망적 평안적인 생활의 자리도 있지만, 정신적 육체적 공동체적 사회적의 부정적인 의식도 자리잡혀 있습니다. 살면서 그런 만남과 생활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일과 만남과 사건을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인간은 존중받고 사랑받고 평안하고 유여를 바라고 있습니다.
부정적 마음과 의식을 식별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면 다가오는 모든 일과 만남과 사건에서 그 부정의 의식과 마음이 그 상대와 대상에게 반응하고 그 반응이 긍정적 방법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에게서나 어떤 사람에게서나 어떤 만남이나 대화, 관계와 생활에서 풀리지 않고 계속 평행선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 풀어감의 방법과 해결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 그와 더 이상 풀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의 문제라기 보다 나의 문제가 앞서는 것입니다. 내가 그의 상처를 내 마음과 무의식으로 먼저 인식합니다. 그와 만나고 대화했을 때, 그의 상처가 내게 또 다시 오고 덮칠 수 있다는 우려와 부담감으로 불안감을 갖습니다. 그러니 그와 만나고 관계하기가 쉽지 않고 대화나 만남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용서에 까지 다다를 수 업습니다. 용서는 멀리 강 건너에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한다. 않한다. 해서 죄의식을 느끼거나 나를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과거의 아픔이 있고 좌절이 있고 절망감이 있었습니다. 과거에 만난 사람들 부모 형제 가족 그리고 내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과의 만남과 삶의 여정에서, 이 부정적인 것들, 상처나 부정적 의식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 용서하기 싫다 하여도 그것이 나의 잘못이라기 보다, 내 마음와 무의식에서 그것을 반발하는 것일 뿐, 그를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죄다, 잘못했다가 아닌 것입니다.
다만 나의 부정적 의식과 가치, 그 행위가 상대에게 어려움을 주고,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하고, 혹시 나의 부정적 의식과 가치와 그 행위가 그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에게 그것에 대해서 나의 허물과 부족함을 알려 주고, 사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도 이부분에서 노력하고 있다고 전하면 됩니다. 용서 이전에 나의 상처를 바라보고 그것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고쳐나가려는 시도가 필요하고, 그것이 용서의 시작입니다.
삶의 여정 속에서 갖가지의 부정적 환경과 조건과 만남에서 이런 부정의 의식과 어려움들이 계속 쌓여갑니다. 그것을 일상에서 회복해 나가는 시간과 자리가 필요합니다. 과거의 허물과 잘못, 부정과 불의함을 볼 때, 오늘 그것을 알아채리고 바꾸고자 하는 노력, 그 노력을 통해서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여정과 방향에만 따라 살지 말고, 나의 상처와 아픔을 보면서 해결를 시도할 때, 그때 와 계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달을 수 있고, 그런 노력을 통해서 성령의 이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용서는 믿음에서 성찰과 회개의 마음의 노력으로 가능합니다. 나의 부정적 역사와 삶과 그 내용에 주님의 개입을 청하고 성령의 인도를 청합니다. 그 은총에서 나의 용서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또한 상대에 대한 용서의 마음의 강이 흐르게 됩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3-24
주님, 저의 예전으 상처를 보게 하소서. 고통과 어둠의 계속의 아픔을 보게 하소서. 앞으로 부정적 생각과 가치와 그 행위를 식별하고 주님 앞에 보여 드리고, 당신 앞에서 풀어가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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