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아래까지(2021.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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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893회 작성일 21-12-24 09:34본문
금요일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종종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 사람 요지부동이야!' 참 사람 안 변해! 마이동풍이야!"
"그 사람 왜 그렇지? 왜 항상 그래"
"왜 그리 부끄럽게 사는거야? 남이 자기를 욕하는지도 몰라!"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살고 있거나, 같이 있거나, 같이 활동하고 만나야 하는 사람이 그렇다면 참 곤혹스럽습니다. 더구나 바르지 않고 참되지 않으면 더더욱 만남에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만일 그가 가정이나 공동체, 어떤 조직에서 높은 곳에 있거나 힘이 있거나 하면 공동체나 조직 전체에 시기 질투나 금이 가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막무가내거나 안하무인이거나 이기적이고 지위나 힘으로만 이끌어서 평화를 이루지 못하면 그 자신은 물론 모두가 괴롬의 바다를 항해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있나요? 그런 사람을 겪고 있나요? 그런 사람에게 피해를 입었나요? 그 사람 때문에 생활이 힘든가요?
이런 사람에게 길을 이야기 하고 진리를 그리고 생명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참으로 멀리 느껴집니다. 결코 변하지도 변할 수도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새롭게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리. 참됨. 곧 순수하고 바르고 거룩한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진리가 순수하고 바르고 거룩한 것이라면, 더욱이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것이라면 그 순수함으로 바름으로 그리고 거룩한 것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의 진리의 삶에 굴절된 모습으로 오만함과 방자함을 보는 것이라면, 나의 진리의 모습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의 순수함, 바름, 거룩함이 작동하고 있는지를.
그의 허물과 부끄러움과 악행을 바라보면서, 그의 것이 나의 거울이 되어 나를 비추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도 순수하거나 바르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곧 거룩하지 않다면 그는 나를 가르치는 것이요 나의 스승 선생이기도 합니다.
우선, 나의 회심과 회개는 그를 치유하고 회복시킵니다. 나의 회심과 회개는 그의 어두운 심연을 보게 합니다. 어둠의 심연 안에 갇혀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갖게 되고 불쌍하고 가련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비록 그와 대면하거나 만나지는 않는다. 하더라고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먼저 개입하시어 그를 바꾸고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순수함과 바름과 아름다움, 곧 그 거룩함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을 초대하고, 그를 성령께 맡겨드릴 수 있습니다.
실상, 그는 어릴 때 부터 지금껏 가족과 이웃으로 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그 상처를 움켜쥐고 그 상처를 묻어버렸습니다. 그리고그 상처를 꼭꼭 막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으로 텃주를 만들고 똬리를 틀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굴절된 돌밭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느님의 성령께서, 주님의 영께서 개입하셔야 풀 수 있습니다. 혹시 그런 굴절된 사람이 있을 경우, 지금 내가 용서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닙니다. 그의 어둠의 똬리를 보지 못했던, 나의 어쩔 수 없이 아퍼하는 고통과 괴로움입니다.
진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령께 의탁하고 그분께 개방하는 일입니다. 인간사에 어둠의 신비는 우리를 그 원인이 그 행위와 계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하지만, 성령께서는 그 길을 진리로 풀어가십니다. 성령께 의탁합니다.
금요일 길 진리 생명의 날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
주님, 인간의 허물과 부끄러움의 내면의 어둠을 보게 하소서. 그 암울함에서 그의 심연의 고통을 보게 하소서. 이 모든 것을 해결하시는 성령께 의탁하고 기도하게 하소서! 어둠의 신비를 보면서 그를 축복하게 하소서!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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