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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말씀-오늘의 묵상

용서, 천천히 가라(2018.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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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07회 작성일 18-12-27 09:46

본문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23


용서는 상대의 죄를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죄를 없애고, 삭쳐주는 것입니다. 최종의 용서는 빚, 채무가 없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와 내가 맺혀 있는 것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 청산한 것을 말합니다.

종종 쓸데없는 부스러기, 쓰레기 등을 치워야 합니다. 결점, 죄, 악습을 없애야 합니다. 나를 누르고 억압하는 것들을 청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상대와의 묶인 것을 푸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묶이고, 누르고, 목죄는 것을 끊고 풀고 떨쳐버리는 것도 용서입니다. 용서는 나와 너, 우리와 모두의 묶임과 조임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용서가 바로 곧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천천히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도 좋습니다. 골이 깊은 묶임과 조임의 관계에서 단번에, 끊어버리듯이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러 갈래와 여러 부분에서 서로 엉켜있는 실타래가 단 한 번에 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엉켜있는 실을 끊을 수도 있지만, 끊게 되면 그 실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용서는 바로 곧도 할 수 있지만, 서서히, 천천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의 지향을 가지고 중단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합니다. 작은 물방울이 지속되면 물이 모이고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중단하지 않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런 용서의 과정이 비록 미소하게 시작하지만, 그것도 엄연히 용서입니다.

지렁이가 느릿느릿 기어갑니다. 달팽이도 느릿느릿 기어갑니다. 거북이도 느릿느릿 기어 걸어갑니다. 그러나 느릿느릿이라 하더라고 엄연히 가고 있는 것이고, 그들도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여 무덤에 계시지 않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주님의 무덤에 도착했지만, 요한이 먼저 들어가지 않고, 베드로를 먼저 들어가게 합니다. 요한은 베드로가 들어간 다음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습니다. 사도 요한은 먼저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나중에 들어가 그의 사도적 겸손을 보입니다(요한 20,8). 느릿의 미학입니다.


실상 사람은 상대를 쉽게 용서하기가 어렵습니다. 곧 내가 살아온 가치, 윤리, 도덕, 습관, 가정, 종교, 교육, 법, 환경, 문화가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세계관에서 성품이생겼습니다. 상대도 또한 상대의 삶의 환경에서 가치가 형성되었습니다. 그들이 사회에서 만나고 관계하며, 함께 활동하는 가운데 서로 똑같은 세계관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들의 삶의 문화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 가치관의 상이함이 충돌하고, 서로 입장을 달리하면 상호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살아온 각자의 역사와 함께 골도 깊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용서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의 현명함은 느림의 미학(美學)을 배우는 것입니다. 상대를 바라볼 때, 상대를 규정하거나 하나의 가치로 절대화하지 않고, 바라봄과 풀어감, 깨달음으로 천천히 가는 것입니다.

살아온 여정과, 과정이 사뭇 다른 가운데, 천천히라는 미학은 모두를 용인하게 하고, 최종적으로는 수용과 관용의 가치로 만나고, 최종의 용서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가는 느릿느릿 미학이 용서에 도움이 되고, 궁극적 용서를 이룰 때 너와 나, 우리 모두의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돌과 같이 굳고, 쇠처럼 찬 사람을 만나고, 진리와 선, 정의와 공정, 평화와 사랑이 결핍된 사람을 만날 때 쉽게 용서할 수 없을 때, 그의 지난 날의 여정과 역사를 깊이 식별하고 바라보는 쉼, 여유의 미학이 필요합니다.


결국 나도 주님 앞에 생명을 얻고, 그고 하느님 앞에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하는 천국의 동반자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용서가 되지 않지만, 서서히, 천천히 느릿느릿이라도 용서하는 노력과 걸어감을 중단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용서의 날입니다.

지금 곳 단번에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용서를 시작하기 바랍니다. 느릿느릿, 천천히 가랑비에 옷젖듯 시작하기 바랍니다. 그것도 엄연히 용서이고, 용서의 시작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요한 20,2-23


느릿느릿도, 작게도, 천천히도 그것도 용서입니다. 그렇게라도 용서를 시작합니다.




이재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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