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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훈화-빈첸시오 말씀

2021년 10월 빈첸시오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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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15회 작성일 21-09-2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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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월 빈첸시오 말씀

 

프란치스코 교황 : 현대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5 장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

259항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 없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열어 놓습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사도들이 그들 자신을 벗어나 하느님의 놀라운 위업을 전하는 선포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도들의 말을 각자 자기 지방말로 알아들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담대하게 언제 어디서나 시대를 넘어서 복음을 새로움으로 선포할 힘을 불어 넣어 줍니다.

이 기도를 토대로 성령께 간청합시다. 기도가 없으면 모든 활동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선포는 공허해 집니다. 예수님은 말만이 아니라 삶으로, 무엇보다도 하느님 현존의 변모된 삶으로,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복음 선포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260항 저는 단순하게 새로운 복음화의 정신에 대한 몇 가지 성찰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270을 지닌다고 할 때 통상적으로 개인적 공동체적 활동의 자극과 동기, 그리고 용기를 주는 도움, 내적인 힘을 가리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화는 개인적 성향과 의무적으로 수행하는 일련의 과제들과 다릅니다. 복음화의 새 장에서 격려의 말, 열정, 기쁨, 관대함, 담대한 용기, 한없는 사랑과 매력이 넘치는 삶과 열의를 북돋우는 말씀들을 찾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불이 우리 마음속에 타오르지 않으면 어떠한 격려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영으로 충만한 복음화란 성령께서 이끄시는 복음화입니다. 성령께서 복음화하는 교회의 영혼이십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성령께 간청합니다. 성령께서 오시어 교회가 자신에게서 벗어나 모든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하야 담대하게 나아가도록 교회를 새롭게 하고 일깨워 주고 재촉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I. 새로운 선교 열정의 동인

262항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는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자입니다. 복음화 관점에서 확고한 사회적 선교적 투신이 없는 신비적 제안들은 복음화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마음을 바꿀 수 없고 영성이 없는 사회적, 사목적 담론들과 관행도 복음화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일방적이고 불완전한 제안들이 복음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몇몇 작은 단체들에만 필요하고 그 이상은 퍼져 나갈 힘이 없습니다.

투신과 활동에 그리스도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내적인 공간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성체 조배를 하고 기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고 주님과 성실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좀 더 많은 시간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무의미해지고 노고에 지치고 열정도 사그라집니다. 교회에 기도하는 허파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며 기도와 함께 하느님 말씀을 읽고 지속적인 성체 조배 단체들이 많아지는 것이 기쁩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요구와 부합되지 않은 사적 개인적 영성을 제시하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강생의 함축된 의미를 언급하지 않으려는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또한 기도에 쏟는 시간이 선교 생활을 하지 않는 핑계거리가 되어 버릴 위험도 있습니다. 개인 중심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도인들의 그릇된 영성 안식처만 찾도록 이끌 수 있습니다.

 

빈첸시오 영성

 

프레드릭의 사목 상호성

그는 사목이 양 방향으로 오고 가는 것임을 알았다. 가난한 이들을 사목할 때 가난한 이들은 그를 위해서 사목하는 것이다. 돕는다는 것은 영예로운 것이 된다. 서로 상호적이 된다. 손바닥을 마주치면 소리가 나듯이 가난한 이를 사랑하면 가난한 가족이 그를 사랑한다. 그들 가족과 부모와 아이들이 그를 위해 기도하며, 그것이 은혜를 갚는 것이 된다(18481021)

 

프레드릭 임종을 앞두고(1853)

내면의 문제에 짓눌리고 건강이 나쁘거나 기분이 불편할 때 돌보는 가난한 집을 방문하였습니다. 거기에서 더 가난하고 불평할 것이 많은 형제들과 얼굴을 마주할 때 나 자신의 우울함을 꾸짖게 되었습니다. 슬픔을 더 잘 참게 되었고 나 자신을 달랬습니다. 고통을 묵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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