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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훈화-빈첸시오 말씀

2023년 5월 빈첸시오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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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98회 작성일 23-05-1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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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월 빈첸시오 훈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a Si)’

 

68항 하느님께 속한 땅에 대한 책임은 지성을 가진 인간이, 자연법과 세상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균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사람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위한 다양한 규범을 인간에게 제시합니다. “너희는 너희 동족의 나귀나 소가 길에 넘어져 있는 것을 보거든, 그것들을 모른 체하지 말고 반드시 너희 동족을 거들어 일으켜 주어야 한다. 너희가 길을 가다가 나무에서건 땅에서건 어린 새나 알이 있는 둥지를 보았을 때, 어미 새가 어린 새나 알을 품고 있거든, 새끼들과 함께 어미 새까지 잡아서는 안 된다”(신명 22,4.6). 이렛날에 쉰다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소와 나귀도 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탈출 23,12). 성경에서 다른 피조물을 고려하지 않는 자의적인 인간 중심주의이며, 이는 균형과 통하지 않습니다.

 

69항 우리는 땅의 재화를 책임 있게 사용해야 하고 다른 생명체들도 하느님 보시기에 고유한 가치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동물은 생존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주님께서 당신 업적으로 기뻐하십니다(시편 104,31참조). 다른 피조물에 관하여, 유용성보다는 존재가 우선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고유한 존엄과 지성을 지녔기에 피조물과 그 고유 법칙을 존중할 것을 요청받습니다. 주님께서 지혜로 땅을 세우셨습니다(잠언 3,19 참조). 가톨릭 교리는 왜곡된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합니다. 피조물은 저마다 고유한 선과 완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합니다.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여...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합니다.

 

70항 구약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시기심의 카인이 아우 아벨에게 극단적 불의를 행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불의가 하느님과 카인, 카인과 그가 쫓겨난 땅의 관계를 망쳐 버립니다. 하느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카인이 모른다고 대답하자, 하느님은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9-11). 이처럼 내가 책임지고 돌보고 보호해야 할 내 이웃과 바른 관계 유지의 의무를 저버리면, , 다른 이, 하느님, 지구와 맺은 관계를 망치게 됩니다. 이 모든 관계를 소홀히 하면, 곧 정의가 이 땅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 삶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정의와 평화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인류를 하느님께서 쓸어버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리라고 결정하였다. 그들로 말미암아 세상이 폭력으로 가득 찼다”(창세 6,13). 곧 모든 것이 서로 관계를 맺고 우리 자신의 삶과 자연과 맺은 관계를 올바로 보는 것은 형제애, 정의, 이웃에 대한 충실함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71항 사람들의 악이 세상에 많아지자 하느님께서 세상에 사람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였지만(창세 6,5-6), 하느님께서는 의롭고 흠 없는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인류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희망을 되찾는 데에 의로운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성경은 회복으로, 하느님께서 직접 자연에 새겨 놓으신 순환의 재발견과 존중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이는 안식일 율법에도 나타납니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모든 것을 마치고 쉬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렛날에 쉬도록 안식일을 지키도록 명했습니다(창세 2,2-3). 이스라엘은 일곱째 해에 땅을 위한 안식의 해로 지내게 했습니다(레위 24,1-4). 이때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자신과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만큼만 거두어 드려야 했습니다(레위 24,4-6 참조).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내면 곧 마흔 아홉 해가 지나면 모든 것에 대한 용서를 선포하였습니다.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희년을 거행하도록 하였습니다(레위 25,10). 이처럼 율법은 인간이 다른 이들과 맺은 관계와 그들이 살고 일하는 땅과의 관계에서 균형과 공정을 보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땅의 결실을 포함하여 땅이 주는 것은 그것이 모든 이에게 속해있다는 것입니다. 땅을 경작하고 돌보는 이들은 그 결실을 가난한 이, 과부, 고아, 그들 가운데 이방인들과 공유해야 했습니다. “너희 땅의 수확을 거두어들일 때, 밭 구석까지 모조리 거두어들여서는 안 된다. 거두고 남은 이삭을 주워서도 안 된다. 너희는 포도를 남김없이 따 들어서도 안 되고, 떨어진 포도를 주워서도 안 된다. 그것을 가난한 이와 이방인을 위하여 남겨 두어야 한다(레위 199-10).

 

사랑의 딸회에 대하여 (성 빈첸시오 교본 170)

1633년 빈첸시오와 함께 기도하고 식별 후에 루이즈는 하느님 사랑과 가난한 이웃을 돌보기를 바라는 몇몇 청년들과 함께 사랑의 딸 회를 만들었습니다.

루이즈는 그는 청년들을 향하여, “병든 이들의 집이 수도원이 될 것입니다. 셋방이 수도실이 되고, 경당이 여러분의 본당이 되며 도시의 거리가 수도원의 회랑이 될 것입니다. 순명이 수도원의 담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수도원의 창살이 되고, 거룩한 겸손이 수도복이 될 것입니다. 소명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거룩한 섭리 안에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신뢰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봉사를 통해서 온 세상 위에 계시는 주님께 봉헌하십시오. 그 봉헌 외에 어떤 형태의 직업도 갖지 마십시오.” 하였습니다.

루이즈와 빈첸시오는 계획과 추진, 지속성을 가지고 상호 보완하면서 나갔습니다. 빈첸시오는 가난한 이들에게 비전을, 루이즈는 비전을 현장에 적용했습니다.

루이즈는 166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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