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구 CMS 부회장 이주희(후안디에고), 금호동협의회 활동회원 김경순(마리아 막달레나)님의 소금창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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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무국 댓글 0건 조회 255회 작성일 21-05-24 13:41본문
재활용 옷가게 ‘소금창고’,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 듣는 귀가 되다
‘소금창고 1004’ 운영하는 김경순·이주희씨
▲ 2009년부터 성동구 금호동에서 12년간 소금창고를 운영해온 이주희(후안 디에고)ㆍ김경순(마리아 막달레나)씨가 마장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새롭게 소금창고를 열었다. |
“어려움 없는 삶만을 복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믿음의 난민이겠지요. 조각처럼 깨진 시련의 아픔이 하느님을 몰랐을 때에는 상처, 우울, 좌절로 다가왔지만 하느님 안에서 다시 본 깨진 조각은 각기 다른 광채를 발하는 보물이었습니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의 한 주택가. 8평 남짓한 공간에 ‘소금창고 1004’ 간판이 걸렸다. 간판 귀퉁이에는 작은 글씨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적혔다. 2009년부터 서울 금호동에서 12년간 소금창고를 운영해온 이주희(후안 디에고, 70)ㆍ김경순(마리아 막달레나, 70)씨가 최근 마장동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제2의 소금창고 시대를 열었다. 첫 소금창고는 재활용 옷가게로 세상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옷을 입혀준 사랑의 보금자리였다면, 새로 문 연 소금창고는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한없이 들어주는 ‘스토리텔링하우스’로 운영하기로 했다.
사선에서 만난 하느님
1996년 사업에 실패해 빈털터리가 된 이주희씨는 한때 오갈 곳이 없어 방황했다.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삶에 큰 시련을 얻었고, 삶의 바닥을 짚었다고 느꼈다. 사방이 막혔다고 생각했던 그때 하늘을 보게 됐고, 스스로 성당에 찾아가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온전히 하느님만을 위해 살고 싶어 충북에 있는 한 무료 요양원에서 4년 동안 살면서 봉사에 투신했다. 무의탁 어르신과 장애인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이들의 마지막 길에 동행했다.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타인의 죽음을 목격했고,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곳은 그가 다시 새롭게 태어나는 ‘영혼의 사관학교’였다.
김경순씨는 유아 세례를 받았지만 오랜 기간 냉담했다. 무서운 신앙관을 가르쳤던 아버지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면서 성당에 등을 돌렸다. ‘이 세상에 나는 왜 존재하는지’ ‘하느님이 정말 계실까’ 고민하면서 깊은 우울증으로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가 그냥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하느님이 있다면 나를 왜 이렇게 두실까 생각했죠. 어느 날부터 ‘하느님이 있으면 나와봐’ 하고 반항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교와의 면담으로 그는 삶에 활기와 기쁨을 찾았다. 성경 공부와 성령 기도회는 그의 삶을 기쁨의 변주곡으로 돌아서게 했다. 하느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된 새로운 시간들이었다.
▲ 이주희씨와 김경순씨가 기증 들어온 새 의류를 정리하고 있다. |
▲ 20년 넘게 소외된 이웃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건네온 이주희·김경순씨의 소금창고에는 감사장과 공로장이 빼곡하다. |
두 동창의 아름다운 만남
두 사람은 초등학교 동창이다. 각자 삶의 길을 가다 2002년 우연히 강남시립병원에서 함께 호스피스 봉사를 하면서 봉사의 삶에 발을 들여놨다. 노숙인과 행려인, 말기 암환자, 알코올 중독자들을 돌봤는데 이들 대부분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이들에게 필요한 의류와 잡화를 모으게 됐고, 내친김에 아예 작은 옷가게를 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기 시작했다. 소금창고가 생겨난 출발이었다.
“저는 원래 길거리표 작품이었어요. 하느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고 세상의 때를 훌훌 벗고 살다 보니 어느 날 하느님 안에 명품이 되어 있었어요.”(이주희씨)
두 사람은 헌 옷을 기증받아 장애인 시설과 병원에 보냈다. 헌 옷을 판매한 돈은 생계 지원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전해줬고, 몽골과 필리핀, 캄보디아에도 옷을 보냈다. 무연고 지적장애인들과 가족 결연을 맺어 정신적 지지자가 되어 주기도 했다. 생필품, 위로격려금 지원, 물품 기증을 비롯해 고시원과 여관을 전전하는 이들의 이웃이 돼줬다. 두 아들을 잃은 부모에게는 3년 동안 매달 찾아가 위로의 손길을 건넸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루고 싶은 말기 암환자의 바다가 보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함께 동해안에 가주기도 했다. 가톨릭 상장례 지도사 자격증도 따 가족과 이별하는 이들의 곁도 지켜줬다. 이들의 봉사는 필요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다 주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호스피스 봉사만 20여 년 해왔다.
이씨는 예수님밖에 없는 ‘부자’라고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정부 지원금을 받아 생활한다. 지난해 열악한 소금창고의 실정을 아는 이들이 정부의 사업 보조금을 받게 해주려고 성동구청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해 사업 보조금으로 486만 원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이들은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반환했다. 예산 편성, 집행 기준 방침에 따라 한도에 맞게 지출을 하고 그 결과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이씨는 공모사업 중단 사유서에 이렇게 썼다.
“저희는 어느 특정 분야의 사회 활동이 아니기에 사전 예산 편성도 어렵고, 규범에 따른 지출을 이행하기가 힘듭니다.(중략) 새들도, 반려동물도 모이를 주는 사람에 의해 길들여집니다. 저희가 보조금을 사용하다 보면 자칫 획일적 사회복지 운영시스템으로 전락해 버릴 요소가 있다고 사료되어 지금처럼 법규와 회칙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사회복지 활동을 지속하고자 합니다.”
소금이 녹아 없어지는 날까지
올해 3월 소금창고에 시한부 사형선고가 떨어졌다. 건물주가 갑자기 한 달 내에 비워달라고 한 것. 1/4로 작아진 공간으로 옮기게 된 이들은 창고에 쌓여있는 상품과 의류를 필리핀과 미얀마 등 동남아의 어려운 지역에 보냈다. 헌 의류는 재활용센터에 기부하고, 기부로 들어왔던 전자제품 등은 동네 주민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갑작스러운 건물주의 통보로 억울했죠. 어차피 시한부 인생이고, 떠나는 마당에 하늘의 섭리에 따라 마무리도 아름답게 하고 싶었어요. 건물주에게 인사했어요.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이곳에서 저희가 많은 나눔을 통해 큰 경험을 쌓고 좋은 흔적을 남기고 갑니다.’”
소금창고의 정기 후원자는 현재 40여 명이다. 이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월세를 내며, 나눔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다.
“소금창고는 하느님의 기업이고, 우리는 돈 버는 기술이 없어요. 사실 굉장히 걱정할 일인데 지금까지 걱정을 안 하고 살아왔어요. 여태껏 이끌어주셨으니까요.”(김경순씨)
이들은 이제 가족과 결별하거나 시련을 당한 이들의 어려움과 하소연, 억울한 마음을 들어주는 일을 하기로 했다. 간판에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라고 쓴 이유다.
이주희씨는 “한여름, 시원한 콩국에 소금을 뿌렸을 때 맛이 살아나듯 세상 어딘가에 맛이 필요한 곳에 우리를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며 “나 자신이 형체 없이 스며들어야 하느님의 존재가 드러난다”고 했다.
이들에게 사랑의 진리는 간단하다.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이 되어 주는 것, 이야기할 곳이 필요한 이에게는 귀를 열어주는 것. 이들은 이것을 ‘소금의 영성’이라 부른다. 소금창고(서울 성동구 마조로 64-16, 010-2224-1004)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
출처 :가톨릭평화신문 2021.05.23 발행 [16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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